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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나라별 명절 음식과 그 의미 - 말레이시아 하리라야와 렌당

leostory-1 2025. 7. 25. 08:00

 

말레이시아에서 하리라야(Hari Raya Aidilfitri)는 단순한 명절을 넘어, 이슬람 신앙과 말레이 전통이 결합된 가장 성스러운 문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하리라야는 라마단(Ramadan)이라는 한 달간의 금식을 마친 뒤 맞이하는 축제로, 금욕과 자기 절제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가족, 이웃, 공동체와 함께 복을 나누는 의미를 가진다. 이 시기는 말레이시아 전역이 축제의 기쁨과 경건한 분위기, 그리고 넉넉한 음식과 따뜻한 환대로 가득 찬다. 특히 이슬람의 환대 정신은 하리라야 음식문화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며, 이 시기에 차려지는 전통 음식들은 풍요와 정성, 공동체 정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하리라야의 종교적·문화적 의미와 더불어, 대표적인 말레이 전통 음식과 그 속에 담긴 이슬람의 환대 철학을 함께 살펴본다.

 

말레이시아 하리라야와 렌당

 

 

하리라야의 종교적 배경과 공동체 중심 문화

 

하리라야는 히잡을 쓴 여성들, 전통 복장을 갖춘 남성들, 새로 단장된 가정집, 이웃 간의 인사와 용서, 그리고 함께 나누는 음식으로 구성된 매우 상징적인 명절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며, 육체적 욕망을 절제하고 정신적 성장을 도모한다. 그리고 하리라야는 이 절제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신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축복의 날로 여겨진다.

하리라야 전날 밤에는 가정마다 집을 청소하고 전통 장식인 ‘펠리타(Pelita, 등불)’를 밝히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명절 아침이 되면 가족이 함께 모스크에서 하리라야 프레이어(Hari Raya Prayer)를 드리고, 이후에는 가장 먼저 부모와 어른들께 용서를 구하는 ‘살람 마훈 마아프(Salam Maaf Zahir dan Batin)’의식을 진행한다. 이 의식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실수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이슬람적 세계관을 상징한다.

이처럼 하리라야는 종교적 통찰과 인간적 관계 회복이 공존하는 명절이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음식 나눔”이다. 하리라야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인들은 수많은 이웃, 친척,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정성껏 차린 음식을 대접한다. 이슬람에서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rahmat)로 여겨지며,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신앙과 인간성 실천의 행위로 해석된다.

 

 

하리라야의 대표 음식: 렌당(Rendang), 사테(Satay), 케뚜팟(Ketupat) 등

하리라야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경건한 축복의 상징이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단연 렌당(Rendang)이다. 렌당은 소고기를 코코넛 밀크, 고추, 레몬그래스, 생강, 각종 향신료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졸여 만든 요리로, 인도네시아에서도 전통 명절 음식으로 사랑받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하리라야 식탁의 중심을 차지하며, 강한 풍미와 정성 어린 조리 과정 때문에 ‘사랑과 헌신의 음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케뚜팟(Ketupat)이 있다. 케뚜팟은 코코넛 잎이나 야자 잎을 엮어 만든 네모난 그릇 안에 쌀을 넣어 쪄낸 음식이다. 이 음식은 단순한 주식이 아니라, 잎을 하나하나 엮어 만드는 과정에서 정성, 질서, 공동체 협력을 상징한다. 또한 잘 익은 케뚜팟은 손으로 쉽게 나누어 먹을 수 있어, 공평함과 나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테(Satay)도 빠질 수 없다. 이는 양념된 고기(주로 닭 또는 소)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음식으로, 고소한 땅콩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하리라야 동안에는 뒷마당이나 집 앞에서 사테를 굽는 모습이 흔하게 보이며, 이는 단순한 요리 과정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교류하는 일종의 ‘축제 의식’이다. 이 외에도 루마피스(Rumah Pith), 도도르(Dodul), 꾸에(Kuih, 전통 디저트) 등이 식탁을 풍성하게 장식한다.

하리라야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랑, 인내, 용서, 감사의 상징이자 공동체 구성원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요리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담겨 있고, 그 음식들이 제공되는 방식에도 예의와 배려, 축복의 철학이 녹아 있다.

 

이슬람의 환대 문화와 하리라야 음식의 정신적 연결

 

이슬람 문화에서 환대는 단순한 예절이나 관습이 아니라, 신앙의 일부로 간주된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손님은 집주인의 복이며, 그 복은 대접을 통해 완성된다”고 가르쳤다. 하리라야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 무슬림 가정에서는 하루 수십 명의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흔하며, 이는 신앙을 실천하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하리라야 식사는 대부분 ‘오픈 하우스(Open House)’라는 문화로 이어진다. 오픈 하우스는 특정 가정이 문을 열고 누구나 찾아와 식사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전통이다. 정치인이나 지역 지도자, 이슬람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가정도 오픈 하우스를 열며, 이는 사회적 연대와 통합, 계층과 종교를 초월한 환대의 실천이기도 하다.

음식도 정해진 식탁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함께 나누는 구조로 구성된다. 플라스틱 접시에 가득 담긴 렌당, 꾸에, 케뚜팟이 계속 차려지고, 손님이 빠져나가면 바로 새로운 음식을 내놓는다. 이러한 ‘끊임없는 나눔’의 행위 자체가 하리라야의 중심이며, 이슬람 환대 정신의 구체적 구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기간에는 비무슬림 이웃들에게도 음식을 나누고 초대하는 문화가 활성화된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다민족·다종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간의 이해와 존중을 음식과 환대를 통해 이끌어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하리라야의 음식은 단순한 전통을 넘어서, 국가 공동체의 결속과 관용 정신을 실현하는 강력한 문화적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화 속에서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과 문화적 계승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으며, 많은 젊은 세대가 전통 요리보다 패스트푸드, 글로벌 퓨전 음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하리라야만큼은 여전히 전통 요리의 중요성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시기다. 이는 명절의 의미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정체성 회복과 공동체 재확인의 시간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역 단체들은 하리라야 기간 동안 전통 요리 대회, 오픈 하우스 행사, 꾸에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등을 개최하며, 젊은 세대가 음식과 전통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고 있다. 특히 SNS나 유튜브 등에서는 ‘우리 할머니의 렌당 비법’, ‘전통 케뚜팟 엮는 법’ 같은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세대에게 전통을 전승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해외 거주 말레이시아인들도 하리라야가 되면 온라인으로 케뚜팟 잎을 주문하고, 사테를 구워 나누는 장면을 공유한다. 이러한 모습은 음식이 단지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정체성과 그리움, 신앙의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렌당 한 접시에 담긴 의미는 단순히 맛이 아닌, 정성, 가족, 조상,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 그 자체다.

하리라야 음식은 과거의 향수에 머무는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공동체를 단단히 묶고, 미래 세대에게 가치를 전해주는 살아 있는 문화 자산이다. 앞으로도 하리라야의 전통 음식과 이슬람 환대 문화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그 핵심 정신을 잃지 않고 새롭게 적응하며 이어질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하리라야는 금식과 절제를 마무리하고, 용서와 환대를 실천하는 축제다. 렌당, 케뚜팟, 사테와 같은 전통 음식은 단지 명절 음식이 아닌, 신앙과 문화,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매개체이다. 이슬람 환대 철학은 하리라야 음식 문화 전반에 스며 있으며, 이 정신은 오늘날에도 세대를 넘어 따뜻하게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