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다양한 명절 문화 속에서 한 가지 공통된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면, 바로 ‘붉은색’이라는 색상의 사용이다. 붉은색은 고대부터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강렬한 색으로 여겨졌고, 특히 아시아에서는 이 색이 ‘복(福)’과 ‘생명’, ‘길운(吉運)’을 상징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명절은 공동체가 함께 축하하고 기원하는 시간인 만큼, 색의 선택 또한 우연이 아닌 심리적·상징적 의미가 담긴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명절 음식에서 붉은색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특정한 상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붉은 고기, 붉은 팥, 붉은 달걀 등은 지역과 문화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복을 부르고 재앙을 막는 색으로 이해된다. 이는 수천 년간 아시아 각국에서 발전한 종교, 철학, 민속신앙이 음식문화와 결합하며 형성된 결과다.
이 글에서는 아시아 3개 국가—한국의 설날, 아르메니아의 부활절, 중국의 중추절을 중심으로, 붉은색이 명절 음식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어떤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단순한 색상의 나열이 아니라, 색을 통한 복의 개념과 음식문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해보자.
한국 설날의 붉은 고기 음식과 팥: 복을 부르는 색의 조화
한국의 설날은 음력 1월 1일에 해당하는 민족 최대 명절로, 조상을 기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통과의례로 기능한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전통 음식은 단연 떡국이지만, 그와 함께 상에 오르는 음식 중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붉은색이 강조된 고기 음식과 팥 음식이다. 특히 설 차례상에서는 산적, 적, 불고기, 육포 등 붉은색이 도드라지는 고기 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고대부터 한국에서는 붉은색이 액운을 막고, 복을 부르는 색으로 여겨졌다. 이는 유교 이전의 무속 신앙과 불교, 도교적 색상 철학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결과다. 특히 고기는 양(陽)의 기운을 상징하며, 붉은 고기일수록 활력과 생명력을 불러오는 신성한 음식으로 간주되었다. 설날 아침에 고기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서, 한 해의 기운을 듬뿍 받아들이려는 문화적 실천이었다.
또한 설날에는 붉은 팥을 활용한 음식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팥죽이나 팥시루떡은 보통 동짓날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설날에도 팥밥이나 팥떡을 만들어 조상에게 올리거나 가족과 나누었다. 팥은 전통적으로 귀신을 쫓는 음식으로 여겨졌고, 붉은색 팥은 특히 잡귀를 물리치고 가정에 복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기능했다.
즉, 한국의 설날 음식에서 붉은색은 단순히 고기나 팥의 자연 색상이 아니라, 신년의 복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막는 주술적 상징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이처럼 붉은 고기와 팥 음식은 설날 식탁 위에서 색, 맛, 의미가 결합된 복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아르메니아 부활절의 붉은 달걀: 희생과 부활을 담은 신성한 색
아르메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로, 기독교적 전통이 민속문화 깊숙이 녹아 있는 국가다. 이 나라에서 부활절은 가장 성스러운 절기로 여겨지며, 부활절이 되면 붉게 물든 달걀이 식탁과 교회 제단, 가족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붉은 달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부활의 상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르메니아 부활절 전통에서는 삶은 달걀을 붉은색 염료에 물들이는 의식이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붉은색은 기독교에서 희생과 구속, 그리고 생명을 다시 얻는 기쁨을 동시에 의미하는 색이다. 예수가 흘린 피는 죄를 씻고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했다는 기독교의 교리 속에서, 이 붉은색은 죽음을 넘어선 승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아르메니아에서는 부활절 당일 가족들이 붉은 달걀을 부딪쳐 깨뜨리는 전통 놀이(‘탈라크’)를 하며, 이때 사용된 달걀은 서로의 부활을 축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게임 같지만, 이 행위는 생명력, 복, 신의 은총이 가족 내에 충만하길 기원하는 민속적 행위로서 기능한다.
붉은 달걀은 식용으로 끝나지 않고, 일부는 부활절 이후에도 집안 곳곳에 장식처럼 두어 보호의 상징으로 여기는 관습도 남아 있다. 이처럼 아르메니아의 부활절 음식에서 붉은색은 종교적 상징과 복의 기원, 공동체 연대가 응축된 색채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중추절의 붉은색 디저트와 달: 풍요와 길상의 시각화
중국의 중추절(中秋节)은 음력 8월 15일, 가을의 중심에서 만월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이 날은 가족의 단란함, 풍요, 장수를 상징하는 시간으로, 다양한 음식과 제례가 행해진다. 특히 중국의 중추절 식탁에는 붉은색이 강조된 디저트와 과일, 전통 간식이 빠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붉은 음식은 월병(月饼) 속에 들어가는 붉은 팥소, 대추소다. 월병은 달의 모양을 형상화한 둥근 빵인데, 속에 붉은색 소를 넣는 것은 복을 기원하는 의미와 함께, 색채로 길상을 표현하려는 문화적 시도이다. 또한 월병 표면에는 종종 복(福), 수(壽), 희(喜) 등의 글자가 새겨지는데, 이는 음식의 외형에서조차 길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상징 행위다.
또한 중추절 차례상에는 붉은 사과, 석류, 대추 등 붉은색 과일이 강조된다. 중국 전통 문화에서 붉은색은 행운과 부, 길한 기운의 대표색으로, 모든 경사스러운 일에 붉은색이 사용된다. 결혼식, 개업식, 출산 등에서도 붉은 봉투와 장식이 사용되듯, 중추절에도 붉은색 과일과 간식이 가족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붉은색은 달과의 연계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붉은 달은 풍년과 건강을 상징하며, 중추절의 보름달을 붉게 장식한 등불과 함께 기리는 전통도 있다. 음식, 장식, 제례에 이르기까지 붉은색은 중국 문화에서 복을 끌어당기고 가족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기호로 사용된다.
붉은색은 아시아 각국에서 단순한 색상이 아니라, ‘복’과 ‘생명’, ‘신성’과 ‘길운’을 상징하는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아 왔다. 한국의 설날에는 붉은 고기와 팥 음식이 새로운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식으로 사용되고, 아르메니아의 부활절에서는 붉은 달걀이 예수의 희생과 부활을 상징하며, 중국의 중추절에서는 붉은소 월병과 붉은 과일이 풍요와 가족 화합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아시아 전통 명절 음식에서 붉은색은 단순한 미각과 시각의 차원을 넘어, 정신적 의미와 공동체적 바람을 담는 상징적 표현 수단이다. 붉은 음식을 통해 사람들은 과거를 기리고, 현재를 축복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결국 우리는 음식을 통해 ‘색’으로 소통하고, ‘복’을 바라며,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