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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나라별 명절 음식과 그 의미 - 부탄 체추와 채식 음식

leostory-1 2025. 7. 29. 09:08

 

부탄은 히말라야 남쪽에 자리한 작은 불교 국가로, 인구는 80만 명도 되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가 목표로 삼고 있는 부탄은 불교적 가치, 자연과의 조화, 공동체 중심 문화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 중심에는 ‘축제(Tshechu)’와 음식’이 놓여 있다. 부탄의 축제는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라, 부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죄업을 씻으며, 지역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신성한 수행의 장이다. 그리고 이 축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불살생을 실천하는 채식 위주의 식문화다.

부탄의 음식은 자연친화적이고 간소하지만, 그 속에 윤리와 종교, 공동체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축제는 이 모든 전통이 정점으로 응집되는 시간이며, 음식을 통해 삶과 영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이 글에서는 부탄의 대표 축제인 체추(Tshechu)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실천되는 불교 채식 문화의 철학, 실제 음식, 그리고 현대적 계승 방식을 4단락에 걸쳐 상세히 살펴본다.

 

 

부탄의 체추의 의미인 불교

부탄의 체추(Tshechu): 불교의식과 공동체의 일체화

 

‘체추(Tshechu)’는 부탄 불력으로 ‘열 번째 날’을 뜻하며, 라마(僧侶)들이 수행하는 가면춤과 예술의식이 펼쳐지는 대규모 불교 축제를 의미한다. 지역마다 체추의 날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정월과 음력 가을철에 집중되어 있으며, 각 지역 사원과 수도원에서 1년에 한 번, 수일에 걸쳐 진행된다. 체추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신앙적 정화를 위한 대중 법회이자, 지역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의례로 여겨진다.

체추에서는 부탄 불교의 중심 인물인 구루 린포체(파드마삼바바)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창무극과 가면춤(Cham Dance)이 주요 의식으로 펼쳐진다. 이 춤은 악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목적 외에도, 신과 인간, 승려와 재가신자, 산 자와 조상의 연결을 상징한다. 신도들은 체추에 참석함으로써 죄업이 소멸되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공덕을 쌓는다고 믿는다.

이처럼 체추는 지역 사회가 하나 되어 신앙을 체험하고, 공동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시간이다. 모든 집에서는 축제를 맞이하여 사원에 공양을 올리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정갈한 채식 음식을 준비한다. 이 음식은 단지 환대의 수단이 아니라, 불살생을 실천하고 공덕을 쌓기 위한 신앙적 행위다. 특히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karuṇā)와 비폭력(ahiṃsā)의 가르침은 육식을 피하고, 채소와 곡물로 신성한 음식을 준비하는 이유가 된다.

 

부탄의 채식 식문화: 불교의 가르침과 식생활의 결합

 

부탄의 식문화는 그 뿌리부터 불교적 윤리에 깊이 닿아 있다. 대다수 부탄인들은 일상적으로는 일부 육류를 섭취하지만, 명절과 축제, 불공 기간에는 철저한 채식을 실천한다. 이는 단순한 식단의 변화가 아니라, 업장을 쌓지 않으려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이 반영된 의례적 실천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부탄 전통 음식은 엠마 다치(Ema Datshi)다. ‘엠마’는 고추, ‘다치’는 치즈를 의미하는데, 이 요리는 고추와 야크 치즈, 양파, 토마토를 함께 끓여 만든 매콤한 스튜 형태다. 고추가 주재료로 쓰이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부탄 사람들의 채식 요리는 단순하거나 밍밍하지 않으며, 강렬하고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체추 기간에는 이 요리가 버섯, 무청, 감자, 완두콩 등으로 다양한 채식 버전으로 변주되어 제공된다.

이 외에도 케와 다치(Kewa Datshi)는 감자와 치즈를 곁들인 채식 요리이며, 쇼캬파(Dry Shakam with Radish)는 육류를 빼고 말린 무와 양파, 토마토로 맛을 낸 건채소 요리로 대체된다. 부탄의 채식 음식은 단순히 육류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재료로 인체와 마음을 정화하고 불살생의 교리를 실천하는 조리법이다.

특히 체추 기간에는 사찰이나 수도원에서 대중에게 무료로 채식 공양을 제공하는 전통도 있다. 이 음식은 대부분 승려나 지역 여성들이 며칠 전부터 준비하며, 공양 후에는 불경 낭독과 명상, 참회 의식이 함께 진행된다. 공양받는 자와 베푸는 자 모두가 음식이라는 도구를 통해 공덕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탄의 채식 식문화는 단순한 건강식이 아니라, 삶과 신앙을 하나로 잇는 영적 실천이기도 하다.

 

체추 속 음식 나눔과 공동체의 작동 방식

 

부탄의 체추는 지역 공동체 전체가 움직이는 큰 행위다. 마을 단위로 준비되는 체추에서는 가정마다 손님을 맞기 위해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하고, 음식의 양보다 정성과 자비심을 중시한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가난한 이에게 복을 나누고, 손님을 통해 조상의 복을 불러오는 행위로 여겨지며, 부탄에서는 이 나눔 자체가 불교적 공덕 회향의 실천으로 간주된다.

가정에서는 주로 찐 밥(레드 라이스), 야채 카레, 고추와 치즈를 이용한 스튜, 렌틸콩 국, 그리고 각종 말린 채소 무침 등을 준비하며, 모든 음식은 마늘, 파, 계란 등 자극적인 재료를 피한 ‘정화 음식’으로 구성된다. 이는 승려나 노승에게 공양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리 원칙이며, 일반 가정에서도 이를 따라 조리함으로써 축제의 경건함을 유지한다.

또한 체추에서는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한 후, 남은 음식은 이웃과 나누거나 사원에 다시 공양하는 관습도 있다. 이러한 음식 순환은 단순한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윤회 사상에 근거한 공동체의 윤리 실천이다.

체추 기간에는 특히 도시와 농촌 간의 교류도 활발하다. 수도 팀푸(Thimphu)나 푸나카(Punakha) 등의 도시에서는 체추를 맞아 각지의 친척과 친구가 모이며, 도시 가정은 지방 특산 채소와 유제품을 공수해 정성껏 요리를 준비한다. 이는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동시에, 부탄 음식문화의 다양성과 영속성을 강화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축제 후반에는 사원 근처에서 자선 음식 나눔 부스가 운영되며, 이곳에서는 버섯국, 채소죽, 삶은 렌틸콩, 발효식 음료 등 다양한 채식 음식이 제공된다. 이는 부탄 정부나 지역 불교 단체의 주도로 운영되며, 노약자, 관광객, 수행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의 식탁으로 기능한다.

 

현대화 속 채식 불교 식문화의 지속과 확장

 

현대화는 부탄 사회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 음식 문화의 유입, 도시화, 관광 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패스트푸드나 육식 요리의 확산도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체추와 같은 전통 축제 속 음식 문화는 여전히 강력한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 승려와 요리사들이 전통 채식 요리를 디지털화하거나, 친환경적인 레시피로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도 팀푸의 일부 수도원과 사찰에서는 ‘명상식(Meal for Meditation)’이라는 이름으로 전통 채식 레시피를 체계화하고 있으며, 유튜브나 SNS를 통해 엠마 다치, 케와 다치, 무 요리 등의 영상 레시피가 세계로 공유되고 있다. 이를 통해 부탄의 채식 불교 식문화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또한 부탄 정부는 체추나 다른 불교 축제 기간 동안 국영방송과 지역 라디오를 통해 채식 실천을 독려하고 있으며, 학교 급식에서도 채식 중심 식단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불교 교리의 실천이자, 기후 위기 대응, 자원 순환, 식량 안보 강화라는 현대적 가치를 함께 반영한 정책적 방향이기도 하다.

관광객에게도 체추 기간의 채식 식문화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부탄을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체추에 참여하며, 사원 주변의 음식 나눔과 공양 체험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이는 부탄이 단순한 불교 국가가 아닌, 불교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며 음식으로도 자비를 구현하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구체적 예다.

결국 부탄의 축제와 음식문화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과 실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문화 자산이다. 음식을 통해 자비와 공덕, 생명 존중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은, 작은 히말라야 국가를 세계적인 정신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 있다.

 

 

부탄의 체추 축제는 단순한 명절이 아닌, 불교적 수행과 공동체 윤리를 체화하는 문화적 정점이다. 이 축제에서 실현되는 채식 식문화는 불살생, 자비, 나눔의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 영성과 일상, 종교와 음식이 조화롭게 연결된 독특한 실천이다. 부탄의 음식은 그 자체로 수행이며, 삶을 공양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