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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나라별 명절 음식과 그 의미 - 몽골 나담 축제와 음식문화

leostory-1 2025. 7. 28. 17:59

몽골 나담 축제의 말타기 모습

 

몽골의 7월은 드넓은 초원에 푸른 바람이 이는 계절이다. 이 시기 몽골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축제의 이름이 바로 나담(Naadam)이다. 매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지는 이 행사는 몽골에서 가장 큰 국가 명절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민속 축제로, 전통적으로 국가, 부족, 가문, 개인의 정체성을 모두 표현하는 중요한 시기다.

‘나담’은 몽골어로 ‘놀이’, ‘축제’라는 의미이며, 이 축제의 핵심은 세 가지 경기—씨름(бөх), 말 타기(морин уралдаан), 활쏘기(сур харваа)로 구성된 “에르 쉴딘 구르반 나담(эрийн гурван наадам, 남성의 세 가지 경기)”이다. 그러나 현대의 나담은 성별을 뛰어넘어, 몽골 전체 민족의 전통과 긍지를 되살리는 축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명절의 기쁨은 대지에서 나온 음식으로 완성된다. 나담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몽골인의 식탁과 생활, 철학이 응축된 문화적 현상이며, 그 중심에는 고기와 유제품을 기본으로 한 유목민 음식문화가 놓여 있다. 나담을 맞아 몽골인들은 전통 가옥인 게르(Ger)를 세우고, 조상과 손님을 맞이하며, 전통 음식으로 공동체적 유대를 재확인한다. 이 글에서는 나담의 역사와 경기, 그리고 축제 기간에 빠질 수 없는 몽골의 음식문화를 4단락에 걸쳐 깊이 있게 살펴본다.

 

 

 

 나담의 역사적 기원과 국가 의례로서의 성장

 

나담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13세기 칭기즈 칸 시대부터 몽골 제국은 씨름, 활쏘기, 기마술을 훈련의 핵심으로 삼았으며, 이것이 국가적인 행사와 연계되어 발달했다. 나담은 처음에는 병사들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군사훈련이자 제례 행사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농경과 유목, 부족과 도시, 신앙과 세속을 아우르는 통합의 의례로 발전했다.

20세기 들어 나담은 몽골 독립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현대적 국가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21년 몽골 인민혁명 이후 나담은 ‘국가의 날’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지금은 몽골 공화국 건국 기념일과 겹쳐 더 큰 규모로 진행된다. 울란바토르의 국가 경기장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나담을 개회하고, 지방의 수많은 소도시와 초원 마을에서도 자체 나담을 개최한다.

나담의 핵심은 ‘에르 쉴딘 구르반 나담’, 즉 씨름, 말 타기, 활쏘기 경기다. 씨름은 몽골 전통 복장을 입고 심판 없는 경기로 진행되며, 항복하거나 무릎이 땅에 닿으면 패배한다. 말 타기는 보통 613세의 어린이 기수가 15km30km를 달리는 장거리 경주다. 활쏘기는 전통 복장과 전통 화살을 이용한 경기로, 남녀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몽골인의 역사, 기상, 공동체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사람들은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승자와 패자 없이 모두가 명절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의례적 행위로 이어진다. 즉, 나담은 ‘먹고 마시고 축하하는 일’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음식의 축제인 셈이다.

 

나담의 대표 음식: 육류 중심의 고열량 식탁

 

나담 기간 중 몽골 가정과 게르에서는 유목민의 지혜가 담긴 전통 음식들이 식탁을 풍성히 채운다. 가장 중심이 되는 음식은 바로 호르혹(хорхог)이다. 호르혹은 양고기 또는 염소고기를 돌과 함께 큰 솥에 넣고 찌는 전통 방식의 찜 요리다. 이때 사용하는 돌은 불에 달군 강돌이며, 고기와 함께 고구마, 당근, 감자 등을 넣고 기름기와 향이 돌에 배이도록 조리한다.

호르혹은 단체 손님 접대용으로 주로 제공되며, 한 번에 수십 인분을 조리해 축제의 중심에 놓인다. 돌은 손에 들고 주무르면 피로를 푼다고 하여 ‘건강의 돌’로 여겨지며, 나담 기간에 호르혹을 먹는 것은 풍요와 건강, 공동체의 복을 비는 상징적인 행위다.

다음으로 빠질 수 없는 음식은 보우즈(бууз)다. 보우즈는 몽골식 찐만두로, 얇은 밀가루 피 안에 양고기와 양파, 소금, 후추만으로 간을 한 속을 채워 찜통에 찐다. 나담 시즌에는 수천 개의 보우즈를 준비해 친척, 이웃, 손님들과 함께 나누며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어떤 가정에서는 보우즈를 접는 방식으로 가문의 전통과 솜씨를 겨루기도 하며, 그 자체로 문화 계승의 한 장면이 된다.

또한, 나담에는 아이락(айраг)이라는 발효 말젖 음료가 빠지지 않는다. 약간의 탄산과 신맛이 나는 이 전통주는 유산균이 풍부한 여름철 대표 음료이며, 말젖을 나무 통에 수백 번 저어 발효시키는 정성스러운 공정이 필요하다. 아이락은 손님에게 가장 먼저 제공되는 환대의 상징이며, 과거에는 왕과 귀족에게만 허락되던 고급 음료였다. 현재는 대부분의 가정이나 나담 행사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호쇼르(хушур)라 불리는 튀김 만두, 아롤(ааруул)이라는 말린 유제품 간식, 타란 차이(цай)라 불리는 짠 밀크티 등 다양한 유목민 음식이 명절 식탁을 채운다. 이러한 음식들은 모두 고단백·고열량으로, 대자연의 척박한 환경에 맞서 살아온 유목민의 생존 방식이자, 음식을 통한 공동체적 기쁨을 실현하는 도구다.

 

나담 속의 음식 나눔과 공동체적 실천

 

몽골의 나담은 단순히 음식의 소비가 아니라, ‘나눔과 초대’라는 공동체 윤리를 실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나담이 시작되면 가족, 친구, 이웃, 심지어 낯선 방문객까지도 집이나 게르로 초대하여 음식을 나눈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는 차를 먼저 내고, 보우즈나 호쇼르를 제공한 뒤, 호르혹이나 아이락을 대접하는 순서가 일반적이다.

나담은 또한 가문의 요리 전통이 되살아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은 이 시기를 위해 보우즈를 수천 개씩 빚어 냉동 보관해두거나, 특별한 날을 위해 직접 만든 말린 유제품을 건조시키는 작업을 한 달 전부터 시작한다. 일부 가정은 나담에서 사용할 고기를 손질하는 특별한 날짜를 정해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의식적인 작업을 하기도 한다.

나담의 음식은 종종 종교적 의례와 결합되기도 한다. 예컨대, 고기를 조리하기 전 조상의 영정이나 불단에 유제품과 음식을 먼저 바치는 예절이 있으며, 첫 보우즈는 고인이 된 가족을 위한 상징적 공양으로 준비되기도 한다. 이처럼 나담의 식문화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사람과 신을 연결하는 복합적인 상징 구조를 지닌다.

현대의 도시 나담에서도 이러한 음식 나눔은 여전하다. 울란바토르 등 도시 지역에서는 나담 기간 공원이나 광장에 야외 게르촌이 조성되어, 음식 장터와 전통 요리 시연, 유제품 판매가 이뤄진다. 이 공간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전통을 배우고 세대를 연결하는 교육의 장이자, 관광객에게 몽골 문화를 소개하는 국가적 자산이 된다. 나담은 결국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서로를 환영하는 축복의 장인 셈이다.

 

몽골의 나담 축제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나 국가 기념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통과 생존, 자연과 인간, 공동체와 역사를 잇는 종합적 문화 현상이며, 그 중심에는 늘 전통 음식문화가 함께 한다. 고기와 유제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나담의 식탁은 몽골 유목민의 환경적 지혜와 영적 철학, 그리고 공동체의 실천적 윤리를 오롯이 담고 있다. 나담에서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몽골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과거를 기리고,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문화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