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뗏 응우옌 단(Tết Nguyên Đán)’, 줄여서 ‘뗏’은 음력 1월 1일에 시작되는 베트남 설날로, 단순한 신년 행사를 넘어서 가족과 조상을 기리고,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깊은 전통의 날이다. 이 명절은 한국의 설날과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음식과 의례, 분위기 면에서 베트남 특유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낸다.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음식인 ‘반쯩(Bánh Chưng)’은 단순한 명절 음식이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져온 전설과 민족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쯩은 뗏 기간 동안 가족이 함께 만들고 나누는 음식으로, 조상 숭배, 농경문화, 가족 공동체의 정신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뗏 명절이 갖는 문화적·사회적 의미와, 반쯩이라는 음식이 어떻게 베트남인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려 한다.
뗏 명절의 기원과 베트남 문화에서의 위치
뗏은 베트남 전통 달력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1일에 시작되며, 보통 약 일주일 이상 명절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명절은 농경사회의 베트남에서 농사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상징적인 시기로,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다. 뗏은 본래 중국의 설 명절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베트남만의 독자적인 의례와 음식, 전통이 덧입혀지며 지금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명절이 시작되기 전부터 베트남 가정은 철저한 준비에 들어간다. 집 안 청소를 통해 나쁜 기운을 쓸어내고, 조상의 제사상을 준비하며, 문 앞에는 복을 불러들이는 의미의 붉은 장식물과 꽃을 단다. 뗏의 시작은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꽁쩌(Cúng Giao Thừa)’ 의식으로 열리며, 이때 집 안에서는 여러 종류의 명절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려 놓는다. 이 의식은 단순한 제례가 아니라, 한 해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이처럼 뗏은 베트남인들에게 단순한 연휴가 아니라 ‘정신적 재출발’의 시간이다. 가족이 모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과거를 정리하며, 새해의 다짐을 공유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하는 그 시간은 뗏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에서 중심에 놓이는 음식이 바로 ‘반쯩’이다.
반쯩의 전설과 유래: 전통이 된 왕자의 선물
반쯩은 단순한 찹쌀떡이 아니다. 이 음식은 수천 년 전 베트남의 전설과 연결되어 있으며, 뗏 명절에 반드시 등장하는 필수 음식이 된 배경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베트남 역사서인 ‘대월사기전서’에는 훙왕 시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설에 따르면, 제6대 훙왕은 나이가 많아 후계자를 정하려 했고, 여러 왕자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제사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오라”는 명을 내렸다. 대부분의 왕자들은 바다의 산호, 산의 사슴고기 등 귀하고 값비싼 재료로 만든 진귀한 음식을 가져왔다. 그러나 18번째 왕자 ‘랑 리에우’는 가난하여 특별한 재료를 구할 수 없었고, 대신 땅에서 나는 쌀과 녹두, 그리고 돼지고기를 이용해 반쯩과 반저이(Bánh Giầy)라는 두 가지 떡을 만들었다.
반쯩은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땅’을 상징하며, 땅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떡 안의 속재료는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농작물과 사람의 노동을 상징한다. 반면, 반저이는 둥근 모양으로 ‘하늘’을 상징한다. 훙왕은 랑 리에우의 음식에 담긴 깊은 철학과 진심에 감동하여 그를 후계자로 임명했고, 이후 이 음식은 뗏 명절의 제례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전설은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베트남 사회의 핵심 가치인 ‘근본으로 돌아가자’, ‘자연과 조화를 이루자’, ‘가족의 손으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자’는 철학을 담고 있다. 반쯩은 오늘날에도 뗏을 맞아 가족이 모여 직접 만들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 전설을 들려주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전승되고 있다.
반쯩의 재료, 조리 과정, 그리고 문화적 의미
반쯩은 찹쌀, 녹두, 돼지고기, 그리고 동잎(잎으로 싸는 포장용 식물)을 이용해 만드는 전통 음식이다. 그 형태는 정사각형이며, 각 꼭짓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도록 정성껏 포장하고, 단단히 실로 묶어 큰 솥에 넣고 오랜 시간 동안 푹 삶는다. 이 조리 방식 자체가 가족 간 협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나의 반쯩을 완성하려면 최소 4~5명이 함께 모여 재료를 준비하고, 포장을 하고, 가마솥에 불을 지피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요리 행위를 넘어서 공동체적 의례로 여겨진다.
반쯩은 조상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음식이며, 이 떡을 받거나 주는 것은 ‘복을 나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명절이 끝나면 많은 가정은 남은 반쯩을 구워먹거나, 볶아 먹는 등 다양하게 활용해 식탁에 올린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반쯩 만들기 대회를 열기도 하며, 이는 지역 축제로까지 발전했다.
또한 반쯩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음식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채식 반쯩, 흑미 반쯩, 작게 만든 미니 반쯩 등도 등장해 젊은 세대의 입맛과 식문화 변화에 맞춰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쯩은 여전히 베트남인의 명절 감성과 가장 깊이 연결된 음식으로 남아 있다.
현대 사회 속 반쯩의 재해석과 문화적 지속 가능성
오늘날 베트남 사회는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전통보다 실용성과 간편함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반쯩은 여전히 베트남 설날의 중심에 있다. 이유는 단순히 전통의 힘이 아니라, 반쯩이라는 음식이 상징하는 가치가 시대를 넘어 보편적인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가족이 모여 함께 반쯩을 만들며 보내는 시간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소통과 문화 전승의 장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반쯩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조상과 땅, 가족에 대한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는 다른 어떤 교육보다도 강력한 문화의 전달 방식이다.
또한 베트남 정부와 지역 공동체는 반쯩을 단순한 명절 음식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뗏 명절에 반쯩 만들기 체험 수업을 열고, 지역 축제에서는 반쯩 전시 및 체험 부스를 마련한다. 심지어 해외 거주 베트남 커뮤니티에서도 반쯩을 만들며 명절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반쯩은 단지 ‘옛날 음식’이 아니라, 베트남인의 정체성과 뿌리를 되새기게 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많은 베트남인은 말한다. “뗏에는 아무리 바빠도 반쯩은 있어야 진짜 새해 같다”고. 이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음식에 담긴 전통과 가치, 그리고 민족적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진실이다.
‘반쯩’은 베트남의 뗏 명절에 없어서는 안 될 상징적인 음식이다. 그 속에는 조상 숭배, 농경문화, 공동체 협력, 자연과의 조화 등 베트남 고유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음식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도 세대를 잇고 문화를 지키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존재한다. 앞으로도 반쯩은 매년 뗏이 올 때마다, 베트남인의 정체성과 정서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