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는 해발 4,000m 이상에 위치한 고산지대로, 험준한 자연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문명과 종교, 그리고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온 불교 국가이다. 그 중에서도 매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열리는 티베트력 새해 명절인 로사르(Losar)는 티베트 불교 사회에 있어 가장 성스럽고 중요한 명절 중 하나다. ‘로’는 ‘해(年)’를, ‘사르’는 ‘새롭다’를 의미하며, 말 그대로 ‘새로운 해’를 맞는 행사다. 이 명절은 단순한 달력상의 전환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신(佛), 조상과 공동체의 새로운 순환을 알리는 종교적 의례로 여겨진다.
로사르의 핵심은 ‘정화와 공양’이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티베트 사람들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전통의상을 입으며, 조상의 영혼과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 속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삶 속에 실천하고, 새로운 복을 맞이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신성한 실천의 한가운데에는 다름 아닌 ‘버터티(Butter Tea)’, 즉 포차(Po Cha)라 불리는 독특한 차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차는 티베트에서 단지 음료가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공양이자 인간과 자연, 신성함을 잇는 상징이다.
로사르(Losar)의 구조와 불교적 상징: 티베트 새해 의례와 음식의 역할
로사르는 티베트 불력의 첫 번째 달, 즉 ‘첫 달의 첫날’에 시작되며, 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약 15일에서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대규모 명절이다. 명절 전 주간에는 ‘구뚝(Gutor)’이라 불리는 정화의 주간이 먼저 시작되며, 이때 가족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불운을 쫓는 다양한 종교 의식을 수행한다. 특히 불교 승려들이 수행하는 가루(僧舞) 의식, ‘초마(Chöma)’를 불태우는 행위, 조상에게 향과 버터등을 바치는 행위 등이 이어지며, 이 시기의 모든 활동은 과거의 업장을 씻고 새로운 복덕을 부르는 의례로 간주된다.
로사르 당일에는 티베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구뚝(Guthuk)이 제공된다. 구뚝은 야채, 밀가루, 건조육, 곡물, 버터, 그리고 보통 기름에 튀긴 수제 국수가 들어간 푸짐한 스튜로, 로사르 전야의 필수 음식이다. 그 안에 상징적인 소품을 넣어 가족끼리 나누어 먹기도 하는데, 예컨대 면 안에 숯이 들어 있으면 그 사람은 “게으르다”는 농담 섞인 해석을 하며 웃음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의식은 공동체 내 유대를 강화하고, 음식을 통해 유쾌한 예언과 정화를 함께 경험하는 상징적 실천이다.
로사르 기간에는 차, 술, 곡물, 전통 간식, 향, 버터등, 불교 경전, 조상 사진 등이 신단에 놓이고, 정성껏 조리된 음식이 가족, 사찰, 이웃과 나눠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음식은 단지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신과 인간, 조상과 후손, 부처와 중생을 연결하는 신성한 매개체가 된다. 특히 티베트인들은 이 기간 동안 차를 몇십 번씩 우리고, 버터를 섞고, 이를 신에게 올리거나 손님에게 나누며, 음식으로 복을 실현하려는 실천적 신앙을 표현한다.
버터티(Po Cha)의 유래와 조리 방식: 고산지대의 생존 지혜이자 신앙의 상징
버터티는 티베트어로 ‘포차(Po Cha)’라고 불리며, 티베트 전통문화의 정수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고열량 식품이자, 명절과 종교의례에서 반드시 사용되는 신성한 공양물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차잎이 아닌, 보이차나 야생 녹차를 이용해 진하게 우리고, 여기에 야크 버터와 소금을 넣고 고온에서 고속으로 휘저어 만든다. 차는 미세한 거품이 생길 때까지 섞어야 하며, 특별한 나무통이나 플라스틱 버터차 믹서기를 이용한다.
버터티의 기원은 8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티베트는 해발 고지의 혹독한 기후 탓에 고기와 버터, 염분이 풍부한 고열량 식단이 필요했으며, 이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포차였다. 단순히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몸속의 에너지를 보충하고 탈수를 방지하며, 장기 저장 가능한 식재료로 신속하게 영양을 섭취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티베트 불교가 전파되며, 차는 곧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로, 그리고 기도 중 집중을 돕는 신성한 음료로 그 지위가 상승했다.
로사르 기간에는 포차가 특별히 많이 소비된다. 아침이 되면 여성들은 집안에서 포차를 대량으로 준비하며, 먼저 신단에 한 잔을 올리고 나머지를 가족들에게 제공한다. 티베트에서는 손님이 오면 가장 먼저 따뜻한 버터차를 내어주는 것이 최고의 환대로 여겨진다. 게다가 차를 마시는 방식에도 예절이 있으며, 차를 따를 때는 두 손으로 컵을 받쳐 들고, 연장자에게 먼저 권한다. 이는 단지 음료를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공양과 존중, 공덕의 실천으로 이해된다.
포차는 또한 다른 명절 음식들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전통 쿠키인 카브세(Khapse)와 함께 제공되며, 찹쌀로 만든 딩모(Dingmo) 빵, 그리고 보리로 만든 죽인 잠빠(Tsampa)와도 잘 어울린다. 포차 한 잔은 티베트인의 정성과 시간, 환경에 맞서 살아남은 지혜, 그리고 불교적 신앙심이 응축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로사르 속 차 문화의 사회적 의미: 계층과 세대를 잇는 공동체적 실천
로사르의 핵심은 공동체의 일치에 있다. 티베트 사회는 불교 신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평적 공동체 구조를 갖고 있으며, 로사르 기간 동안 그 정신은 차와 음식을 통해 실현된다. 각 가정은 이웃, 스승, 승려, 친족에게 직접 만든 포차와 전통 간식을 들고 방문하며, 이러한 교류는 계층, 세대, 성별을 넘어서 이루어진다. 특히 버터차는 연장자에게 올리는 최고의 예우이며,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포차 끓이는 법과 마시는 예절을 교육받는다.
사찰에서도 포차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사르 기간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의식을 진행하며, 그 사이사이에 포차와 잠빠로 허기를 달래며 수행을 이어간다. 신도들은 이 포차를 직접 준비해 사찰로 가져오고, 공양실에서 승려들에게 차례로 제공한다. 특히 일부 신도는 자신의 소원을 담아 포차에 버터를 더해주거나, 고급 찻잎을 사용하는 등 차를 매개로 한 신앙 실천과 공덕 회향을 실현한다.
포차는 또한 세대 간 교육 수단이기도 하다. 로사르 준비 기간 동안 조부모는 손자들에게 차 끓이는 법, 신단에 차를 올리는 법, 차를 마시며 경전을 낭독하는 법 등을 전수하며, 이는 구술 문화와 종교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이 된다. 이런 문화는 티베트 사회에서 음식이 단순한 소비물이 아니라, 신성한 지식과 공동체 정체성을 전달하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티베트 사회에서는 “차를 마시지 않은 하루는 기도가 없는 하루와 같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차, 특히 포차가 삶과 신앙, 공동체와의 연결을 잇는 상징적 수단임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며, 로사르에서 그 의미는 더욱 강조된다.
현대화 속 포차 문화의 변화와 전통 계승의 과제
현대 티베트와 디아스포라 지역에서는 포차 문화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인도 다람살라, 네팔, 미국, 캐나다 등지에 흩어진 티베트 커뮤니티는 여전히 로사르를 성대하게 기념하지만, 재료 수급의 어려움과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포차를 대체하는 음료나 즉석 버터차 믹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한, 젊은 세대는 포차의 짠맛과 버터향에 익숙하지 않아 로사르에도 녹차나 밀크티를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포차 문화를 지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로사르를 맞아 매년 포차 경연 대회와 전통 차 문화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유튜브에는 ‘할머니의 포차 레시피’, ‘티베트 버터차의 역사’와 같은 콘텐츠가 다수 존재한다. 이민자 가정에서도 로사르가 되면 반드시 포차를 만들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고향과 종교의 정체성을 전수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티베트 내부에서도 건강식으로서의 포차가 재조명되고 있다. 고산 기후에 적응하는 데 최적화된 조리법과 고열량, 장기 보관이 가능한 특성 덕분에, 현대 영양학 측면에서도 포차는 매우 이상적인 전통 음식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부 젊은 셰프들은 전통 포차에 생강, 계피, 천연 감미료를 추가한 퓨전형 레시피를 개발하며, 로사르 음식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로사르와 포차는 티베트인이 단순히 명절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 공동체의 유대, 세대 간의 교육,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함께 품고 있는 총체적 문화 유산이다. 음식은 사라질 수 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포차 한 잔 속에서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다.
티베트 로사르와 포차 문화는 단순한 명절과 차 문화를 넘어서, 불교적 세계관, 공동체 중심 사회, 고산 환경에 맞선 생존 지혜, 그리고 가족과 신에게 바치는 정성과 공덕이 하나로 엮인 고유한 문화다. 버터차 한 잔은 티베트인의 삶을 대표하는 작지만 깊은 상징이며, 로사르를 통해 그 의미는 매년 새롭게 되살아난다.